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뤼트 크롤 (문단 편집) === 클럽 경력 === 뤼트 크롤은 [[1968년]] [[AFC 아약스]]에서 데뷔하는데 성공한다. 처음에는 당연히 후보였지만 아약스의 주전 왼쪽 수비 반 두 벤보데가 당시 라이벌 [[페예노르트 로테르담]]으로 이적하면서 크롤은 주전을 차지한다. 당시의 아약스는 이제 막 부임한 [[리누스 미헬스]]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시기였다. [[1960년대]] 당시는 전술의 혁명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을 시기였다. 아약스는 이 전까지 '전방 압박'이라는 신개념 전술로 [[에레디비시]]를 호령하고 있을 때였고 미헬스는 이를 캐치해내서 '압박'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다른 몇가지 요소를 자신의 전술에 도입한다.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[[토탈 풋볼]]. 정해진 포지션을 벗어나 압박을 지속하면서도 공간을 찾아서 계속해서 유기적으로 스위칭하는 움직임, 또 이런 체력을 커버하기 위한 점유율 유지, 좁아진 공수간격에 넓어진 뒷공간을 보완하기 위한 [[오프사이드]] 트랩. 이는 이 전의 여러 전술들의 완전체였다. 그리고 이 전술을 이용하려면 가장 중요한, 이에 맞춰서 움직여주는 선수들이 필요했다. 그 때 마침 [[요한 크루이프]]가 자신의 팀에 들어왔고 그는 이 전술에 딱 들어맞았다. 또 수비의 크롤은 그 오프사이드 트랩과 커버 플레이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다. 그리고 1969-70에 첫 리그 우승과 컵우승을 해내며 더블을 따낸다. 또 아약스는 [[요한 크루이프|크루이프]], 크롤, [[벨리보르 바소비치|바소비치]], [[요한 네스켄스|네스켄스]], 훌쇼프, [[스야크 스바르트|스바르트]], [[아리에 한|한]], [[빔 쉬르비르|쉬르비르]], [[호르스트 블랑켄부르크]] 등 강력한 멤버들이 여럿 모였다. 크롤은 [[풀백(축구)|레프트백]] 외에도 리베로도 뛸 수 있는 수비지역에서의 다재다능함으로 미헬스의 신임을 얻었다. 크롤-블랑켄부르크-훌쇼프-쉬르비르로 이어지는 [[1970년대]] 아약스 포백은 강력한 팀의 공격 가담을 하면서도 여러번 한시즌 20실점 이하를 찍는 괴물같은 수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. 1970-71, 1971-72, 1972-73시즌 [[UEFA 챔피언스 리그|유로피언컵]] 3연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다. 특히 1971-72시즌에는 리그와 컵까지 우승하며 [[트레블]]을 달성한다. 그러나 [[1974년]]도부터는 [[FC 바이에른 뮌헨]]에게 [[UEFA 챔피언스 리그|유로피언컵]] 트로피를 내주고 팀의 에이스 [[요한 크루이프|크루이프]]와 주장 [[피트 케이저르]]가 팀을 떠나며 크롤은 주장 완장을 받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[[1970년대]] 후반 팀의 약진을 이끌었다. 그리고 서른이 갓 넘은 나이 그는 아약스를 떠난다. [[1980년]] 그는 잠시 [[NASL]]의 [[밴쿠버 화이트캡스 FC]]로 이적했다가, [[세리에 A|이탈리아 세리에 A]]의 [[SSC 나폴리]]로 이적해 4시즌간 뛰었다. 이후 [[리그 1|프랑스 리그앙]]의 [[AS 칸]]으로 이적해 1시즌간 뛴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